2012년 7월 3일 화요일

(중요 소식) 6.25를 잊지 말자


 
 
(전쟁 역사) 6.25를 잊지 말자.
 
북한의 남침.
한국은 1950년 4월 21일에 북한의 남침을 예측하고 “비상 경계사태”를 발동했으나 남침의 징조를 발견 할 수 없어 그 해 6월 23일에 비상을 해제하고 24일(토) 오전 일과를 마치고 전 한국군 부대에 외출, 외박을 허가 하였다, 바로 이때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남반부 국군의 북침을 격퇴하고 남반부를 해방 시키자”는 구호 하에 남침을 감행하여 역사적 비극인 6.25 전쟁을 도발 했다.
 
* 미국시간 6월 25일 (일요일) “U N 안보리”가 긴급 소집 되었으며 “북한을 평화 파괴 행위”로 규정하고(9:1) “1. 북한군의 즉각 적대 행위 중지. 2. 군사력을 38 선 이북으로 철회”를 결정 하였다.
* 6월27일에 미군 전방 지휘소가 한국 수원에 설치되고 “맥아더”장군은 일본 동경에 서 수원에 도착, “이승만 대통령”과 “무초 미 대사”와 함께 긴급회의를 하였다.
*“맥아더”장군은 한강 남쪽 제방에서 한 한국군 사병을 참호 석에서 만나 “언제까 지 이 참호 속에 있겠는 가”라는 장군의 질문에 병사는“저는 대한민국의 군인입 니다, 상관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이 참호 속에서 나라를 지키겠습니다”라는 말 에 장군은 감동을 받고 “내가 일본에 가서 미국 지원군을 보낼 것이니 용기를 잃지 말고 싸우라”고 한국 부대장에게 말하였다고 한다.
* 미국과 U N 을 중심으로 16개국이 참전 하였고 5개국이 의료지원을 하였고 20개국이 물자를 지원 하였다.
* 7월21일에 대전 전투시 미제24사단장“딘소장”이 실종되여 인민군의포로가 되었다.
* 인민군에 의하여 3일 만에 서울은 점령을 당 하였고 40일 만에 대구와 부산만 남고 한국의 전 지역이 점령을 당하여 위기에 처 했다.
 
U N 군의 총 반격 작전에 성공.
* 8월16일에 미 B-29 폭격기 98대가 왜관 인민군 지역에 융단 폭격을 하였는데 이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날씨가 쾌청하여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 9월 19일부터 U N 군과 국군의 반격이 낙동강 전선에서 미 제9군단과 제1군단 그리 고 국군 제 1,2,군단이 시작 되었습니다.
* 인천 상륙 작전은 9월 15일에 “맥아더”장군의 지휘로 새벽에 미 해병1사단, 제5 연대, 289명이 상륙 하였고 미 7사단 기동 부대 75,000여명이 상륙하여 작전에 성공 하였습니다.
이 작전은 군사 전문가에 의하면 5,000:1의 도박 작전이라고 하나 성공 하게 된 것 입니다. 작전의 성공으로 9월 28일에 89일간 인민군의 치하에서 벗어나 중앙청에 “태국기”를 계양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환도식 에서의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
“하나님의 은혜로 U N 군과 함께 우리 군대는 한국의 수도 서울을 해방하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의 독재적 지배에서 해방된 서울 시민은 자유와 존엄의 생활 속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입은 상처는 세계 각국에서 도와주기로 하였습니다. 본인은 ”맥아더“ 국제 연합군 최고 사령관에게 감사의 뜻을 전 미국과 U N 군의 용기와 예지로 한국 국민은 새로운 희망 속에서 새벽이 찾아 합니다. 올 것을 믿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들은 통일을 위하여 모든 임무를 다할 것입니다“
 
북진
* 10월 7일 U N에서“한국 평화 통일에 관한 8개국 결의안”이 47:5로 결의 되었고, 제 2항에“U N 군은 한국통일 정부 수립에 필요한 기간을 넘어서 한국의 어떠한 지 역에도 머무를 수 있음”이라 했습니다.
* 미 24사단, 1 기갑사단, 국군 1사단, 영국군 27여단은 10월 9일에 평양으로 입성하 였고, 10월25일에는 신의주 까지 진격 했습니다.
 
* 10월 20일 에 이승만 대통령은 인산인해를 이룬 “평양시민 대회”에서 “나의 사랑 하는 통포 여러분, 저는 만고풍상을 다 겪고 39년 만에 처음으로 대동강을 건너 평 양에 왔습니다.
여러분들을 만나니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목이 메어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40여년 동안 일본 학정과 공산주의자들의 지옥 생활에서 있었던 것을 생각 하면 눈물이 가득 합니다....“ 라고 연설을 했습니다.
*10월 20일에는 국군 제 2군단이 초산 압록강 까지 진격 했습니다. 11월 21일에 수도 사단은 혜산진, 11월 24일은 청진 까지 진격 했습니다.
 
중공군 개입과 휴전.
* 10월 7일부터 약 12만의 중공군이 가입 하게 되어 U N 군과 한국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1월에는 중공군 개입 병력이 39만 여명으로 추산 되며, 휴전 전까지 100만 명으로 추산하기도 합니다.
*12월11일 흥남 철수 작전은 하나님의 기적 이었습니다. 44.000여명(국군 13,000명, 미군 31.000명) 철수 작전에 성공하였고, 12월 12일에는 민간인 98,000여명이 하나님 의 은혜로 철수에 성공하여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국 군민은 다시 1951년 겨울에 다시 후퇴하게 되었고, 12월 24일에는 8군 사령관 “워커”장군이 자동차 사고로 전사한 일도 있었으며 1951년 8일3월 에는 서울을 재탈 환 하였습니다.
* 1953년 7월 27일에 2년간의 협상 끝에 휴전이 조인되어 포성이 멎었으나 지금까지 남북은 분단 된 조국이 된 것입니다. 당시 서울 시민은 거리에 나와 “통일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전쟁의 피해 상황.
* 실종자-250만 명, *피난 이재민-370 만 명, *공산측의 학살, 납치-20여만 명,
* 전쟁 고아-10만 명, *이산가족-1,000 만 명, *남, 북 민간인 사상-350만 명,
 
* 참전 U N 군-590만 명,( 그 중에 미군-570만 명)
* 미군 전사자-33,700명, *미군 부상자-10만 명.
 
(6.25 란 무엇인가-김순옥 저, 에서 요약 발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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