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진경 목사님을 추모하며
(목사 이 기 홍)
원만한 인격을 가지시고 항상 화합을 위하여 일하셨던 목회자 정진경 목사님(88세)의 갑작스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는 비보를 듣고 삼가 고인을 추모하며, 하늘나라에서 안식하심을 믿으며 한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40여 년 전 서울신학대학에서 사역할 때 교수, 대학원장으로 수고 하셨던 정진경 목사님을 가까이 모셨고, 1976년에는 서울 신촌성결교회 담임 목사로 계실 때 저를 불러 부목사로 사역하게 하시고, 항상 “동역자”로 소개 하셨던 겸손하시고 덕이 있으셨던 목사님을 기억하고 존경 합니다. 2006년에 미주 아즈사 대학교에서 “총 동문회상을 받으시고, 2008년6월에 52년 전인 1956년에 아주사 대학에서 공부하신 기숙사에 ”기념 동판식“에 박희민 목사님(전 나성영락교회 담임 목사)과 함께 참석 했던 일, 그 주일에 사우스 베이 선교교회에서 ”인생의 하프타임(마6:33)“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 하시며, ”인생은 후반부를 보람있고,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 하신 것, 그 해 11월 한국 방문시 사모님과 함께 뵙던 일이 마지막 이였습니다.
2009년 9월, 한국 논산 훈련소에서 장병 세례식에 한국을 방문하여 꼭 뵙기를 원하였는데 이렇게 갑자기 소천하시니 이제 이 세상에서는 뵙지 못하게 될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게 됩니다. 정진경 목사님은 천주교의 고 김수환 추기경이 크신 별이신 것 같이 한국 개신교의 큰 별 이십니다.
다음 6 가지로 한국 기독교 교계에 크게 공헌 하셨습니다.
첫째. 한국 기독교계의 지도자 이십니다.
성결교 교단 이상으로 개신교 전체의 큰 어른이십니다. 성결교 총회장(1981-1982), 한국 복음주의 협의회 공동회장(1982-1987), 한국 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1992), 한국 세계선교협의회 대표회장(1990-1998)등으로 한국 교계 연합 사업에 크게 일 하셨습니다. 항상 협동과 화합을 주장 하셨습니다.
둘째. 은혜가 넘치는 설교가 이십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은혜가 넘치고, 내용이 있으며, 평이하고, 현대 감각이 있습니다. 말씀은 오늘의 말씀으로 임하고 있으며, 어느 해 심한 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시고 “죽음을 넘어서”(시 118:17)라는 설교에 온 교우들이 눈물의 바다가 되어 은혜를 받았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셌째. 저술가 이십니다.
목회자이면서 학자로써 많은 책을 저술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글은 쉽고 내용이 있으며, 문학적인 향취가 있습니다. 1998년에 발행한 “목회자의 지성과 인격”이라는 책에 “살아온 발자취, 설교 20편, 목회논단20편, 컬럼 33편”의 내용에서 목사님의 지성과 인격을 알게 됩니다. 그 외에도 많은 저서를 남기어 후배들이 교훈을 받고 있습니다.
넸째. 말씀과 생활이 일치하셨습니다.
말씀을 잘 전하고 그 말씀대로 살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정목사님께서는 항상 소박하게 사셨고, 후배들에게 꿈을 심어 주셨으며,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장례식도 소박하게 하기를 원하셨으며, 조화, 조의금도 사양하고 있습니다.
다섰째. 신학과 목회의 일치를 위하여 노력 하셨습니다.
“신학자들은 은혜가 부족하고, 목회자들은 신학이 부족하다”는 말이 있는데 목사님은 목회에 신학을 접목하는데 항상 노력 하셨고 신학자이면서 목회자입니다. 그러기에 서울 신학대학에서 15년간 교수 하셨고, 신촌성결교회를 대 교회로 성장 시키셨습니다.
여섰째. 후임목사와 원로 목사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관계에서 이루워 지는데, 목사님은 평소에 인간관계를 잘 하셨습니다. 신촌성결교회는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관계에서 모범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정진경 목사님의 넓은 인품, 그리고 이정익 목사님의 존경과 지혜로 된 것입니다.
목사님 넘으나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셔서 사모님과 자녀들이 충격을 받으시고 슬픔 중에 계시나 큰 고통 없이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으니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만나게 될 약속을 믿으며, 목사님 영원히 안식 하소서
(200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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