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5일 목요일

(신앙 간증)(7) 회고록-사우스베이 선교교회 개척과 사역


사우스베이 선교교회 개척과 사역.
 
개척과 역사
한국, 미국교회에서 20년간 성역을 감당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6년간 사역 하면서 단독목회에 대하여 기도하게 되었고 1985년 1월에 동양선교교회에서 사역을 마치고 교회를 개척 하기로 결심 하였습니다. 1984년 말경부터 미국교회를 렌트 하기위하여 “Torrance”지역에 미국교회를 찾던 중에 ”Lomita Christian Church"를 발견하고 당시 임시 담임 목사이신 "Dr.Smith"를 만나 교회 렌트를 허락 받게 되었습니다. 100여명의 좌석의 본당에서 기도 할 때 “어떻게 이 교회의 좌석을 채우나”하고 염려 했으나 후일 에 좌석이 부족한 교회가 되었을 때에 믿음이 부족 했던 것을 회개한 적도 있었습니다.
동양선교교회 임동선 목사의 적극적인 협조로 1985년 1월 13일 예배시 “파송”을 받고 1월 20일 주일에 첫 예배를 이 미국교회에서 드리었습니다. 한 주일 전에는 “이동우 장로 댁”에서 오수남 장로와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임시 당회” 형식을 가추웠고 첫 예배 때는 장년 50여명이 모여 본인의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사야 43:14-21) 이라는 제목의 설교, 오수남 장로의 기도, 스미스 목사의 환영사, 이원희 목사의 축사, 이천영 목사의 축도로 감격적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1985년 3월 3일 주일에 정식으로 “사우스베이 동양선교교회” 창립예배를 드리면서 “필자의 사회, 박계로 장로의 기도, 송정명 목사의 성경 봉독(행 28:26-39), 동양선교교회 성가대의 찬양,
임동선 목사의 설교(광야의 찬송), Dr. Smith의 축사(윤기성 목사의 통역), 오창희 목사의 축도로 새로운 역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이 창립예배에 300여명(어린이 포함)이 모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창립예배 다음 주일인 1985년 3월 10일 에는 장년 92명이 모여 교회는 급성장 하였습니다. 목회 방향은 “1. 말씀 중심의 교회, 2. 교육하는 교회, 3. 선교 하는 교회, 4. 사랑을 나누는 교회”로 정하였고 동양선교교회의 적극적인 협조로 교회는 새롭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첫 예배 때에 10가정은 “오수남, 이동우, 최용하, 강영구, 강중경, 윤기성, 이현국, 손정호, 김충구, 김종신, 그리고 필자 가정“ 입니다. 동양선교교회 선교부는 월 선교비 $ 3.000을 지원하였습니다. 동양선교교회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적극 협력 하므로 교회는 계속 발전 하게 되어 임동선 목사의 사랑과 배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6개월 만에 교회는 재정적으로 안정 되어서 선교비($3.000)를 받지 아니하고, 교회는 자립 하였습니다.
교회 성장 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은혜의 말씀과 인간 관계”라고 말 할수 있습니다.
“원만한 인간관계”는 “욕심을 버리고, 양보하고, 겸손하고, 주는 자가 되고, 매일 영적으로 죽자”는 것으로 이 일을 지키도록 노력 했습니다.
 
교회 성장의 네가지 시기.
 
1. 개척기(1985-1986)
교회를 개척하여 매 주일 예배를 드리는 중에 교회는 날로 부흥하게 되어 교회를 조직하고 교
육하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1985. 4. 14주일에 학습-16명, 세례-10명, 유아세례-1명, 입교-84명의 예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5.19에는 야외 예배로 온 교우들이 야외에 나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랑의 친교를 나누었습니다.
6/8주일에는 “제1회 공동총회”를 개최하여 교회를 조직 하였고 1985년 첫 해에 여러 집회를 가졌는데, 6.8.에 장자천 목사 부흥사경회, 7.10.에 허경삼 목사의 제직 수련회, 7.24.에 김요셉 전도사의 청소년 집회, 8.7.에는 정진경 목사의 제직 수련회, 9.12-14.에는 전영규 목사의 간증 집회, 9.29.에는 유재건 장로의 가정 문제 쎄미나 등이 있었습니다.
 
1986년도에는 1.23-25.에 임동선 목사의 부흥회가 있었고 1.26.주일에 임직식으로 이동우장로-장로 취임, 홍재룡, 전병철, 최용하-안수 집사가 되었습니다. 3.30. 부활 주일에는 사우스 베이 목사회 주최로 “새벽연합예배”에 필자는 “부활의 확신”이라는 말씀을 선포 했습니다. 8.3.주일에는 임직식으로 장로안수-강중경, 안수집사-이종철, 이현국, 오선규, 권사취임-임정화, 강윤회, 홍영옥이 되었습니다. 11.5-8에 김흥수 목사의 부흥 사경회를 가젔습니다.
개척한지 2년 동안에 교회는 안정되고 기초를 쌓아 가므로 날로 부흥 되는 기쁨이 되었습니다.
 
2. 성장기(1987-1991)
하나님의 축복으로 2년을 지나면서 교회는 안정이 되어 어린이, 청소년을 포함하여 200여명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좋은 일꾼들을 보내 주tu어 “사우스베이” 지역에서 소문이
좋게 퍼졌으며 성장하는 교회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협동 목사로 윤기성 목사와 윤사모의 도움이 컷던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 시기부터 어린이들, 중고등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하여 사우스베이 지역에서 “교육을 잘 하는 교회”로 발전 하게 되었습니다.
 
1998년에는 김석규 목사의 부흥회(3.3-5), 임직식(7.24.-장로안수:이종철, 권사 취임-정영주, 이춘자, 강은희), 박종무 목사의 선교 집회(7.22-24) 등의 행사가 있었습니다.
 
1889년에는 조종남 목사의 부흥집회(1.16-18), 임직식(7.23-장로:조해환, 안수집사:유병철,
이선집), 박종기 목사의 청소년 집회(10.5-7) 등의 행사기 있었습니다.
 
1990년에는 박희민 목사의 제직수련회(5.9), 임직식(7.8-장로:최용하, 안수집사:박인철, 정명철), 정승일 목사의 부흥 사경회(10.29-31) 등의 행사가 있었습니다.
 
1991년에는 서울 신학대학의 합창단 공연(5.9), 소그룹 성경공부(C C C 10계단), 흑인 교회와 유대 강화(4.27), 신성종 목사의 부흥회(6.6-9), 임직식(7.21-안수 집사: 윤길현, 이재우, 권사:이종복, 이정숙, 김재춘) 등의 행사가 있었습니다.
 
3. 안정 사역기(1992-1995)
1992년부터 3년간 특별한 사역은 현 교회를 구입하게 되었고 조해환목사와 윤기성 목사가
교회를 개척한 일입니다
 
1992년에는 인천장로성가단의 공연으로 은혜를 받았으며 1월 30일에는 기도하고 있었던 교회 건물을 60만불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교회는 10년 만에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는데 10년 동안에 10번 교회를 옮기는 어려움을 당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축복하여 주셔서 렌트한 교회를 7년 만에 구입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렌트한 미국 교회는 점점 신도수가 줄게 되었고, 우리교회는 계속 성장하여 성도들의 정성어린 헌금으로 교회를 구입 한 것입니다. 당시 당회원들은 가정당 $10.000정도 헌금하였고 특별히
김용의 장로께서 이 헌금에 함께 동참하신 일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양은순교수의 가정 쎄미나(2.14-16), 조종남 박사의 웨슬리 강연(6.14), 강영우 박사의 교육 부흥회(6.18-20), 임직식(9.13-안수집사: 이상길, 김영수, 온영오), 박승은 목사의 부흥회(10.15-17), 조해환 목사의 교회 개척(11.15-브엘선교교회), 등의 행사가 있었습니다.
 
1993년에는 년초에 김병호 목사가 부목사로 부임하여 교회는 더욱 활성화 되었습니다.
윤기성 목사가 교회를 개척하였고(2.21-아나하임 동양선교교회), 임직식(3.7-원로장로: 강중경,
권사: 유영숙, 임쥴리, 박오진 김소진), 필자의 한국 논산 훈련소 세례식 참여(4.19-30), 홍종현 목사 의부흥회(8.27-29), 송증복 목사의 전도 훈련(10.29) 등의 행사가 있었습니다.
 
1994년에는 손인식 목사의 제직 수련회(4.22), 임직식(4.24- 권사: 김해필, 홍형님), 전영규 목사의 간증 집회(6.9-12), 동영진 군목의 군 선교 집회(9.19-20), 러시아에 의류 15 Box를 송부,
등의 행사가 있었습니다.
 
1995년에는 임동선 목사의 제직 수련회(1.13), 이만신 목사의 부흥회(2.24-25), 임직식(3.5-권사: 김기하, 홍효현, 김명자), 필자와 이동우 장로는 논산 훈련소 세례식에 참여하고(4.22),
정동규 박사의 간증 집회(9.17), 카자스틴에 의류 13 Box를 전달(12.12) 했습니다.
 
4. 은퇴 준비기(1996-1998).
필자는 1998년 65세로 정년이여서 후임 목사 선임을 위하여 기도 하였습니다.
 
1996년에는 임직식(3.3-장로 취임: 정충섭), 비디오 성서대학 개교(5.4), 홍순우 목사의 부흥회(5.9-11), 대학부의 영적 각성 집회(9.5-8, 손인식 목사, 이종용 목사, 오정현 목사, 컨스탄틴 선교사), 교육관 증축 헌금 약정(10.20), 청빙 위원회 구성(12.1) 등입니다.
 
1997년에는 어와나 교육(1.24), 김상모 목사의 부흥회(2.27-3.2), 이중용 목사의 교육 쎄미나(9.25), 황의정 목사의 교육 쎄미나(12.19) 등입니다.
 
1998년은 필자가 교회를 개척하여 13년 목회를 하고 은퇴하고 원로 목사로 추대 받은 해 입니다. 정승훈 목사의 특별 집회(2.26-28), 임직식(3.1-원로장로 추대: 이동우, 강영구, 권사 취임: 김경자, 전행엽), 후임 목사 선임을 위하여 40일 금식 기도회를 실시하였고(5.1-6.19)
이대규 목사 (서울 영광교회)가 청빙 위원회에서 결정이 되어 임시공동 총회(7.21)에서 3/2투표를 받어 사우스 베이 동양선교교회 2대 담임 목사로 부임 하게 되었습니다.
 
필자는 1998년 10월 4일에 본 교회사역을 마치고 “이기홍 원로목사 추대식과 이대규 목사 취임식”을 성대히 거행 했습니다. 이 예식에 임동선 목사의 설교, 이정근목사, 유재건 장로의 축사가 있었습니다. 필자가 은퇴 하던 교세는 ”300여명 성도(장년-170명, 어린이,중고등부-130명)“이였고, 1년 예산은 30만 불, 그리고 교육관 증축 헌금 10여 만불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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