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5일 목요일

(신앙 간증)(6) 회고록 - LA 동양선교교회 사역


L A, 동양선교교회의 사역.
 
미국으로 이민
1979년은 필자의 생애에 큰 변화가 일어난 해였습니다. 22년의 한국 사역(육군 군목, 아현교회, 서울 신학대학, 신촌 교회)을 마치고 미국으로 이민하여 “이민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이민은 아내의 권고로 결심하게 되었고 원래는 동부 뉴저지 감리교회에 결정 되었으나 갑자기 L A 동양선교교회 임동선 목사를 서울에서 만나 동양선교교회 행정 목사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1979년 3월 29일에 온가족이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내와 본인의 노력으로 비자가 나왔으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아내는 삼남매의 교육을 위하여서는 어려움이 있지만, 미국으로 가는 것이 필요 하다고 강조하여 필자도 따르게 된 것입니다. 30년이 지난 오늘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섭리이고 하나님의 축복인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한국을 떠날 때에 장녀 혜경은 대학 1학년(이대), 차녀 은경은 고등학교 2학년, 아들 병덕은 중학교 2학년 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삼 남매는 신앙생활도 힘쓰고,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여 자기 위치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 합니다.
 
동양선교교회의 역사.
동양선교교회는 1970년 7월 29일에 임동선 목사께서 본인의 자택에서 27명이 모여 첫 예배를 시작 하였습니다. 교회는 급성장하여 1971년에 “크렌샤워”에 건물을 구입하여 이전 하였고, 1975년 1월 16일에 현 위치인 웨스턴에 있는 대형 마켙을 구입하였습니다.
동양선교교회는 1대-임동선 목사(1970-1990), 2대-이병희 목사(1990.1-1991.4), 3대-박광철 목사(1993.12.26-1998.8.7), 4대-강준민 목사(2001.12.1-현재)가 담임 목사입니다.
필자가 1979년에 행정목사로 부임 시 장년 700여 명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한국에서 이민이 증가되어 교회는 급성장하게 되었으며 한 주일에 새 신자가 10여 명 씩 등록하여 하나님의 축복으로 6년간 사역 중에 1985년경에는 장년 3,000여명이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남가주의 특징.
L A를 중심한 남가주 지역은 1781년에 “스페인”인들이 이주 하였고 1821년 경 에는 “멕시코”영토 였으며 1846년에 “미국” 영토가 되어 발전 했습니다. 1850년에 “Los Angeles" 가 ”City"로 승격되었고, 1886년 이후에 대도시로 급성장 하게 되었습니다. "Los Angeles"의 뜻은 "천사"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있으나 현재는 "타락한 도시"가 되고 있습니다. 범죄가 심하고, 갱단이 있으며, 마약이 범람하고, 한인 교포들이 1년에 30여명이 총격에 의하여 생명을 잃는 비극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점도 있습니다.
1.넓은 대 도시이고, 2."Free Way"가 세계적인 수준이고, 3.상업(은행이 많음)도시이고
4.세계 130여 종족이 살고 있으며(인종 차별이 적음), 5.기후가 온화하며, 6.태평양 연안에 있으며 7.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관문이고, 8.한인들이 제일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한인교회-1,200개, 한인 식당-1,000여개) 9.대학은 240개가 있으며, 10.노인들이 살기 좋은 도시입니다. L A를 중심한 위성도시는 88개가 있으며 인구는 1,000만이 넘고 있습니다.
유명한 대학은 "U.C.L.A, U.S.C, U.C.Irvine, U.C.Saniego," 등 이며, 신학 대학원은 "Fuller, Clarement, Azus, Talbot, Westerminster Seminary" 등입니다. 한인 신학교는 60여개가 있습니다. 유명한 미국 교회는 “갈보리 교회(Dr.Chuck Smith), 수정교회(Dr,Robert Shuller), 새들백교회(Dr.Warren)”등 입니다.
남가주는 관광도시로 유명하며, “박물관, Hollywood, Universal Studio, 식물원, Magic Mountian, Queen Mary호, Knotts Berry Farm, Beach, Palm Spring, Disneyland, San diego Area" 등입니다. “2박 3일 ”코스로 남가주를 중심하여 여러 관광지를 갈수 있는 곳입니다(그랜드 캐년, 요세미티와 S.F, 세코야와 킹스캐년, 자이언, 브라이tm 캐년, 라스베가스와 데스베리, 기차여행(산타바바라, 피스모 비치), 동부관광, 카나다 록키, 옐로스톤, 하와이, 크루즈 여행, 모뉴먼트 벨리, 칼스베드 동굴“등입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호텔과 식사도 고급입니다. 이러한 곳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며 세계 여러 종족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사역
1.1976년 10월 10일에 "10개년 계획"을 수립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성전 교육관 건축, 교인 3,000명 증가 운동, 수양관 구입, 모국 100개 교회 선교, 해외 선 교, 학원 선교, 교회 학교 부흥, 이민자들의 생활지도, 교회음악 발전, 이중언어 예배, 도서 관설치 등)
2.1982년 7월 15일에 필자는 동양선교교회 뉴스지에 “창립 10년의 성장 분석”을 발표했음.
1) 초교파 독립교회.
2) 임동선 목사의 리더쉽(설교, 기도, 회생, 선교, 교육, 열정).
3) 부 교역자들의 팀사역(이기홍, 이원희, 송정명, 이중용, 이요한).
4) 한국에 농어촌 단기 선교사 파송(필자는 1981년에 1개월간 한국 농어촌 교회 방문하여 자전거 20대와 올갠 1대를 기증).
5) 1983년에는 임동선 목사의 안식년으로 1년간 “임시 당회장”을 역임.
6) 1984년 7월 28일-8월 11일에 세계 24회 올림픽 대회가 L A에서 열릴 때 개막식에 40여 개 국 1,500 명의 민속 행열시 본교회 고등부 여학생 30명이 참석, 필자가 총 준비하고 인도 하였음.
3. 당시 영락교회 김계용 목사는 본 교회 급 성장을 말 하였음.(1981.12월호 본 교회 뉴스지 에) “동양선교교회의 발전이유는 선교, 교육, 봉사에 있으며 임동선 목사의 영적 리더쉽 에 있음”라고 기재 되어 있음.
 
함께 일 하였던 사역자들
1979년 1월-1985년 1월까지 6년간 많은 사역자들과 힘께 일 하였습니다. 부목사는 “허경삼, 이기홍, 송정명, 이중용, 이원희, 안용식, 임병택” 목사 등이며, 교육부에서는 “이요한, 석태운, 정완기, 손주영” 목사 입니다. 협동 목사는 “이천영, 오봉운, 박용장, 오태상”목사였으며, 장로들은“김용서, 한건수, 오해훈, 한인남, 홍순웅, 이재권, 김몽학, 강영구, 박계로, 조웅래, 김병권, 김재권, 오수남 , 오철훈, 이정배, 정문섭, 김중완, 노수정, 성기윤, 조영근, 신윤철 , 안정현, 조규철, 김광락, 온성철, 이성호, 방조영, 백형권, 신상우, 이건기, 조상회, 이동우 ”등입니다.
당시 중요 지교회는 “세리토스(석태운), 중부(김진광), 벨리(이원희), 알라스카(이중용), 쌍파울(황은철), 파라과이(강두호), 독일(강성구), 밀라노(최창범), 로마(한평우), 사우스베이(이기홍)”등입니다.
필자는 “세계복음 선교 연합회” 총회장을 4회(1989,1991,1992,1994)역임 하였습니다.
 
대 교회에서 많은 경험을 얻었음.
1.목회 행정의 중요성을 배움.
2.인간관계로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음.
3.여러 행사를 통하여 은혜를 받고 체험을 얻었음.
4.세계적인 강사를 모심으로 교훈을 얻고 교제를 나누었음.
5.어려운 분들을 도울 수 있었음.
6.L A에 있는 교회, 사회지도자들과 사귐을 갖게 되었음.
7.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어 교회 개척 시에 교회가 급 성장하게 되었음.
8.기도하는 분들을 갖게 되었음.
 
임동선 목사
1.열정적인 설교가 입니다.
목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인데 임동선 목사는 온 성도들을 감동 시키는 설교를 매주일 강단에서 선포했습니다. 그의 설교는 미래 지향적이고 소망과 확신이 넘치는 내용으로 이민 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설교 준비를 위하여 많은 기도와 준비를 하였으며
수시로 부목사들에게 설교 예화를 문의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성서적이고 복음적이며 화술이 웅변적입니다. 부흥사의 은사가 있어 세계 각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2.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의 능력이 있어 설교에 은혜가 넘치고 있습니다. 새벽 기도회에는 항상 일찍 나오시고 앞자리에서 간절히 기도 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공적인 기도에는 간결하고 내용이 풍부하며 열정적이며 감동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하여 기도하실 때는 간절하여 성도들이 힘을 얻고 있었습니다. 영적 리더쉽이 기도에서 나오기 때문에 목회를 성공적으로 하였습니다.
 
3.선교에 대한 열정입니다.
교회의 목표는 선교, 교육, 봉사입니다. 그중에 선교는 임동선 목사의 꿈입니다. 1970년 교회를 개척 하면서 첫 번째 주일 헌금을 한국 농어촌교회에 보낸 일이 있어 한국 교회를 선교 하게 된 것입니다. 세계 각 지역을 순회 하면서 복음을 전 하였고, 선교사들을 도우며 지 교회를 개척하여 현재는 40여 지교회가 서게 된 것입니다. 1996년 7월에 제3차 한인선교대회가 시카고 “빌리 그레이함 센터”에서 3,00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세계선교와 한국교회의 사명”이라는 주제로 말씀 할 때에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동양선교교회가 발전한 이유도 “선교와 교육”인 것입니다.
 
4.희생의 모범자입니다.
임동선 목사는 깨끗한 생활과 희생적인 봉사로 평생을 사셨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고 물질이 허락하시면 이웃을 많이 도왔습니다. 선교 여행 시에는 선교사들을 개인적으로 도와주었고 부흥회 강사비를 받으면 농어촌교회에 장학금으로 보내셨습니다. 은퇴하신 후에도 개인 주택이 없으시고, 좋은 차도 양보하고 ,고급 옷도 사양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5.남가주 지역에 영적 지도자입니다.
1970년에 동양선교교회를 창립하여 대교회로 성장 시키는데 헌신 하였으며, 1990년 1월에 원로목사로 추대 은퇴하여 계속 세계선교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가주 기독교 협의회장, 한인 세계선교 대회장, 미주 한인 예비역 군목회장, 세계 복음 선교연합회 총회장, 월드 미션 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 하였으며 교계, 사회적으로 영적 리더쉽을 가지고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땀은 흘러도 기쁨은 샘물 처럼, 심은 대로 거두리라, 스스로 개척하라, 절망의 극복, 대 계명의 사랑, 환란 날에 신앙, 회고와 전망”등입니다.
 
필자는 부족 하지만 40여 년간의 목회 중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설교 선포에 힘을 썼습니다.
설교 준비에 시간을 많이 사용 하였으며 기도하며 많은 도서를 참고 하였습니다. 설교는 은혜 가 있어야 하고 쉬운 설교를 하도록 노력 하였습니다. 목회자들이 목회에 성공 하려면 설교에 생명을 거러야 합니다. 목사의 설교가 감동이 있는 교회는 부흥 하고 있습니다.
 
2. 말씀을 선포한 그대로 사는 일입니다.
부족 하지만 노력 하였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입니다. 원만한 성품이 중요하며
“화. 분노,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교회는 인간들이 모여 봉사하고 있기 때문에 갈등과 의 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여야 합니다. 사우 스베이 동양선교교회에서 13년간 목회 중에 큰 분쟁이 없었던 일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3. 2세 교육에 중점을 가졌습니다.
유능한 교육 지도자들(김병호, 정승훈, 오석환, 고성일, 이태종, 전인순, 이향나)이 사역을 담당 하였고, 정명철 장로(사위-중 고등부), 이혜경 집사(장녀-유년부, 초등부), 이은경 집사 (2녀-유치부), 이병덕 집시(장남-중 고등부), 이성연 집사(자부-교회 반주)들이 목회에 도움 을 얻게 되었고 교육부에서 사역을 하였습니다.
 
4. 선교에 힘을 썼습니다.
필자의 여러 번 선교 여행(중국, 러시아, 동구권)으로 선교에 중점을 두었으며, 한국 노산 훈 련소 장병 세례식(1회에 3,000여명 장병)에 참여 했으며, 두 교회(조해환 목사, 윤기성 목사) 를 개척 하였습니다. 교회 이름 그대로 더욱 열심히 선교 하지 못 했던 것을 후회 하고 있습 니다.
 
5. 성도들에 대한 세심한 사랑과 관심입니다.
“장례식, 결혼식, 추도예배, 생일 예배” 등을 성의 있게 준비하여 인도 했으며, 시험 중에 있는 교우들을 수시로 심방하여 대화, 권면, 위로 하였으며, 사정에 의하여 교회를 떠나는 교 우들에게는 사랑으로 따뜻이 보냈습니다. 새 신자들에게는 “픽업, 아파트 안내, 직업 알선, 자녀들 학교 입학”등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6. 효과적인 교회 행정입니다.
모든 문서를 잘 정리 하였고, 주보 작성에 관심을 가졌고, 재정에 대한 예산, 결산을 투명 하 게 하였고, 교회역사에 남는 문서는 잘 보관 하였으며, 1년에 2회 “주소록”을 발행 하였습 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에 대한 사랑입니다. 영혼을 사랑 하였기에 목회는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목회에 도움을 준 “오수남, 이동우, 강중경, 강영구, 김용의, 김원철, 김낙현, 이종철, 조해환, 윤기성, 최용하, 정충섭, 김동규, 김병호, 김석환 ” 등의 모든 사역자(목사, 장로)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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