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5일 목요일

(신앙 간증)(4) 회고록 - 서을 신학 대학 사역


서울 신학대학에서의 사역
 
서울 신학대학의 역사
1968년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조종남 박사를 이사회에서는 학장으로 결정 하였고
필자는 35세의 젊은 나이로 총무 과장으로 임명이 되었습니다. 성결교회는 1907년에 설립 되었으며 서울 신학대학은 1911년 3월에“동양선교회”에 의해 무교동에서 ”성서학원“으로 시작 되었으며, 그 후에 발전하여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교단 신학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1885년 4월 부활 주일에 “언더우드, 아펜설라”선교사가 한국에 들어 와 장로교는 1901년에
평양에 “평양신학교”를 세웠고, 감리교는 1905년에 서울에 “협성 신학교”를 세웠고, 구세군은
1910년에 서울에 “성경 사관학교”를 세웠으며, 서울 신학대학(당시 성서 학원)은 1911년에 설립 된 것입니다. 장로교에서는 “네비우스 (Nevius)"정책을 시행 했으며 이 선교 정책은 ”자립 정치, 자립 재정, 자립 선교“로 한국교회 성장에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무교동에 설립된 성서학원은 1921년에 서대문구 충정로 3가 35번지에 이전 하였고, 1940년에
“경성 신학교”로, 1945년에 “서울 신학교”로 발전 하게 되었습니다. 1959년에는 문교부의 인가로 “서울 신학대학”으로 결정이 되었고, 1974년에는 경기도 부천으로 교사를 신축하고 이전 하였습니다. 대학은 급성장하여 1992년에는 “서울 신학대학교‘로 오늘의 신학대학교가 된 것입니다. 초대 학장은 ”존 토마스 선교사“, 계속해서 이명직, 에드원, 길보른, 조종남, 이상훈, 강근환, 홍순우, 최희범, 최종진, 목장균 박사께서 총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교육 이념과 교리.
대학의 교육 이념은 5가지입니다.
1. 성결교단의 전통과 교리를 교육.
2. 기독교 교역자 및 지도자를 양성함.
3. 신학은 웨슬리 정신을 가지고 있음.
4. 높은 학적 수준과 깊은 경건 훈련을 강조.
5. 헌신적 선교요원을 양성 함.
 
대학의 교리도 5가지입니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2.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주장하고.
3. 웨슬리 신학에 따라 거듭남과 성결을 추구 하며.
4. 성령의 증거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으며.
5. 심판자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 것입니다.

 
부천 소사동으로 교사 이전.
조종남 박사는 학장을 맡으면서 시급한 문제는 “교사 이전” 이였습니다. 당시 서대문 충정로 3가 35번지에 있는 교사는 성결교회를 상징하는 곳이기 때문에 매매에 대하여 반대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대학 발전을 위하여 조박사는 부지를 매각하고 새 부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1971년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계무 장로(아현 교회)의 부천 부지와 상의가 되어 그의 과수원 대지 외 산야 24.048평을 당시 저렴한 가격인 6,000만원에 구입하고 계약서에 “이명헌 목사(이계무 장로의 선친) 기념관(강당)”을 학교 당국이 경제적으로 허락 할 때에 건축하가로 하였습니다. 필자는 문교부, 부천시, 경기도청(수원), 등을 수 십 번 방문하여 허가를 얻게 되었으며 1차 계획으로 본관 2층과 남녀 기숙사 1동을 신축 하였습니다. 설계회사는 “삼원사” 이호진 설계사가 하였습니다. 건축에는 설계가 중요함을 깨닫게 된 것은 수시로 설계 변경을 하기 때문입니다. 건축회사로는 “경남회사”가 시공 하였으며 당시 학교 당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시공회사의 도움을 여러 번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1972년에 기공하였으며 본관 1, 2층은 “엘마 선교사의 수고로 미국 ”K-Mart" “크레스기”회장께서 40만 불을 헌금하여 이루워 졌으며 “크레스기 기념관“으로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1974년 본관 헌당식에 ”크레스기“회장께서 직접 참석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에 필자는 1년 반 동안 고생한 일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으며 보람과 기쁨을 함께 갖게 되었습니다. 이 행사 후에 “크레스기”회장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며 사람은 떠났지만 신학대학 건물은 여전히 남아 지금도 많은 전도자를 양성 하는 기관이 된 것입니다. 천국에 가신 “크레스기”회장은 이 대학교를 보면서 미소를 띠우며 기뻐할 것입니다. 지금도 “서울 신학 대학교”를 생각하면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아름다운 추억이 영원히 남고 있습니다.
대학 부지를 조성 할 때에 대학 앞에 있는 하천 부지를 이용하여 “대학 입구 도로”를 만들 때에 하천 부지에 살고 있었던 주민들의 반발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필자가 대학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에 주민 한사람이 도끼를 들고 사무실에 찾아와 흥분하여 횡포를 부렸습니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식 이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그 주민을 잘 권고 하였습니다. “후일에 당신 자녀 한 분이 이 대학에서 공부 할지 모르니 협조를 부탁 한다”고 말 하여 보낸 일도 있었습니다. 본관 신축 중에 폭우로 새 건물 사무실이 물바다 가 된 일도 있었으며 지하 “탁구 실”은 습기가 계속 차게 되어 그 해결책으로 고민하고 노력도 해보았으나 별 다른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 했습니다.
대학 부지는 원래 협소하고 경사가 있지만 대학 후편 에 있는 울창한 숲과“복천암”에서 나오는 생수는 온 학생들과 교수 직원들이 마시는 음료수가 되었습니다.
분위기 좋은 대학
당시 조종남 학장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대학은 날로 발전 하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사역 할
때에 교수로는 “조종남, 정진경, 이상훈, 강근환, 박승은, 엘마 길보른, 민지은” 등 이었으며 여 기숙사 사감으로는 배가례 교수였습니다. 가을 김장때가 되면 교수, 직원 부인들이 총 동원 되어 기숙사 겨울 김장을 준비 하였으며 대학 행사 때에 강사 접대는 학장 사모, 배가례 교수, 필자 아내가 봉사 하였습니다. 그 당시 대학에는 정치 데모도 없었으며 좋은 분위기 가운데 교수와 학생들 그리고 사무직원들은 하나가 되어 학업에 매진하고 경건 훈련에 힘을 썼습니다. 대학 위에 있는 깊은 숲은 공기를 맑게 하고 온 학생들이 기도처로 이용하고 있으며 “복천암”의 물은 생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본관 입구에 있는 기도실은 교직원, 학생들이 수시로 들어가 기도에 힘을 썼으며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새로운 능력을 받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대학 위치도 부천시 소사에 자리 잡고 있어 교통이 편리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 갈 때에 도로가 경사가 되어 힘이 들지만 건강에는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1974년 경 본관과, 기숙사는 현대식 건물이어서 한국의 모든 신학 대학 중에 가장 뛰어난 건물과 시설 이였습니다. 지금도 발전 하는 대학 소식을 듣게 되면 보람을 느끼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크게 발전한 서울 신학 대학교.
세월은 흘러 35년이 지난 오늘의 “서울 신학 대학교”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크게 발전하여 한국의 중요한 신학 대학이 되었으며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의 교단 신학교로 목회자, 선교사, 교회 지도자를 양성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대지도 구입하고 새로운 건물이 신축 되어 있습니다. 본관이 3층으로 증축 되었고, “도서관, 이명헌 목사 기념관(강당), 대학원 강의실, 대학원 기숙사, 학생회관, 성결의 집(대 강당), 우석 선교센터(이계무 장로 2남 이대범 집사의 헌납)” 등 많은 건물이 있습니다. 대학에는 “신학과, 교회 음악과, 기독교 교육과, 사회 복지과, 선교 영어과,”가 있으며 대학원에는 “신학대학원, 사회 복지대학원, 상담 대학원, 선교 대학원, 목회 선교 전문 대학원,”이 있습니다.
학생 수도 3,500여명이 넘고 있으며, 교수진이 100여명, 강사진이 300여명, 사무직원도 60여명이 되고 있습니다. 필자의 생애 중에 7년간의 서울 신학대학 사역은 제일 보람된 일이었으며
그 떼의 일만 생각하면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있습니다.
 
조종남 박사를 다음과 같은 면에서 존경 합니다.
 
1. 복음주의 신학자입니다.
조종남 박사는 서울 신학대학, 국제대학(영문과), 미국 아즈베리 신학대학원, 에모리 대학교에서 수학 하는 중에 “웨슬리 신학”을 전공하여 “성결교 교단과 감리교 교단”의 신학에 크게 공헌 했습니다. “웨슬리 신학”에 대한 논문, 저서를 많이 남겼으며 각 대학과 교회에서 강의를 통하여 “성결”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말씀을 통하여 많은 학생들과 교우들이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2. 대학 행정가입니다.
“학자와 행정”을 겸하기가 어려운데 조 박사는 이 두 가지를 다 갖추고 있습니다. 서대문 충정로에 있는 구교사에서 부천시로 교사를 옮기는데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 일은 특별한 대학 행정을 알아야 가능 한 것입니다. 당시에 “김종호 이사장, 엘마 길보른 계획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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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수고도 컸습니다. 필자는 사무처장으로 실무를 담당하여 탁월한 조박사의 행정에 대한 은
사를 체험하기도 하였습니다. 조박사의 명석한 판단력, 강한 추진력 등은 아무도 따라 갈수 없었습니다. 1970년대의 교사이전은 대학 발전에 크게 힘이 되었습니다.
 
3. 깨끗한 삶입니다.
대학을 운영하게 되면 많은 재정을 다루게 되는 것입니다. 재정 관리를 정직하게 처리하고 한 점 의혹 없이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조 박사는 대학의 재정을 다루고 대학 부지를 구입하고 건물을 신축 하는데 항상 깨끗이 처리 했습니다. 필자는 대학에서 “총무과장, 사무처장, 재정 관리실장”을 맡아 7년간 봉직하면서 조 박사의 “정직성”을 존경하며 자신 있게 “물질에 깨끗한 분”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학교 운영에도 항상 학칙과 법의 원측을 따랐으며 이사회 교수회도 사심 없이 인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처리함으로 “냉정 하다”하다는 말을 들었으나 많은 분들이 조 박사를 존경 하고 있습니다.
 
4. 어머니, 사모의 간절한 기도가 있습니다.
모친 최경애 전도사는 장충단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을 하면서 아들 조 박사를 위하여 기도 하셨고 전음전 사모는 겸손 하면서 기도로 내조를 하였습니다. 오늘의 조 박사를 있게 한 이면에는 두 분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어머니 최전도사의 수시로 하시는 권고와 충고는 조 박사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한국의“무디”라고 말하는 “이성봉 목사”의 위대한 능력은 사모의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을 이루는 근본 동력입니다.
 
5. 특별한 취미가 있습니다.
테니스, 골프, 사진 등은 조 박사의 취미 생활입니다. 이러한 것을 하면서 먼저 전문 서적을 구입하여 읽고 연구하여 지식을 안 다음에 취미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며 전문적 수준이 되고 있습니다. 건강에도 도움이 되어 80세가 자나도 크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오래 하려면 몸이 건강 하여야 합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지만 건강관리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건강관리를 잘 하여 몸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서울 신학 대학교는 “성결교회의 선교 요람지”입니다. 이 대학에서 실력 있고 능력 있는 사역자를 배출하게 될 때에 성결교회는 발전하고 한국교회의 미래는 밝은 것입니다. 총회본부와 교회는 적극적으로 신학 대학교를 지원하여 우수한 사역자들을 양성 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재학생들의 자세
1) 거듭난 경험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분명 하여야 합니다.
2).사명감을 가지고 영혼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3).학생 때에 학업에 충실하고 많은 신학 서적을 탐독 하여야 합니다.
4) 경건 생활에 힘쓰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능력의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5) 목회자, 선교사, 학자, 등의 목표를 설정하고 부단한 노력이 필요 합니다.
6) 재학생 때에 가능 하면 성경 전체를 3번 이상 읽어야 합니다.
7) 인간관계를 잘 하여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 하여야 합니다.
8) 교수들을 존경하며 교수들의 사랑을 받는 학생들이 되어야 합니다.
9) 목회는 정도의 길을 가여야 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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